2022. 10. 20. 11:19ㆍ읽으며쓰는육아일기
스물 다섯 명. 대 가족 여행 스타트
남편의 시외가, 그러니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의 삼 남매와, 며느리, 사위, 그리고 그 손주들.
얼마 전 아기 탄생으로 총 스물 다섯 명.
서울, 경기, 진주, 부산 멀리 떨어져 살지만 사이가 좋아서 매달 돈을 모아 매년 만나 모임을 가졌다.
그러다 코로나가 터졌고, 다들 아이들이 어려 다 같이 만나지는 못하고 있다 코로나가 조금 잠잠해져 모임 계획을 세웠다.
그동안 만나지 못해 돈이 많이 모여서 제주도로 떠나기로 했다.
총 스물 다섯, 펜션 하나를 통으로 빌렸고 우등 버스도 빌렸다. 총무이자 기획자인 남편이 바빴고 나도 덩달아 바빴다.
시가 모임이지만 다들 마음이 잘 통해 만나면 즐거웠던 터라 기대가 컸고, 아이도 오랜만의 제주도 여행에 신이 났다.
여행 전날 시이모님 댁이 몸이 안 좋아 불참을 알려왔고, 시삼촌도 못 오신다고 알려와서 총 열아홉. 남편은 반쪽 짜리 여행이 되었다고 속상해했지만 그래도 적지 않은 수가 제주도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아이가 아프다
부산 팀, 총 8명. 시부모님, 아가씨 부부, 우리 네 식구는 비행기 티켓을 구하지 못해 전날 저녁에 출발하게 되었다. 코로나 이후 아이들이 비실비실거려 걱정이 앞섰지만 체온계에 각종 비상약을 챙겼다. 외국도 아니고 한국인데 총무가 빠질 수는 없으니 강행하기로 했다. 가는 당일 둘째가 갑자기 기침을 컹컹하기 시작해 공항 약국에서 기침약을 사려고 했는데 24개월 미만 영아는 처방이 없으면 기침약을 살 수가 없었다.
숙소에 도착해 아이들을 씻기고 재우고 나서 맥주도 마시며 즐겁게 놀고 있는데 둘째가 깼다. 그리고 밤새 자지 못하고 울고 보챘다. 기침 소리도 심상치 않았다. 밤새 잠을 못자고 제주도의 소아과를 검색했다. 단체 여행에 폐를 끼치지 않고 병원을 빨리 다녀와야 해서 소아과가 모여 있는 곳을 검색했고, 후기가 나쁘지 않아 나만 아이를 데리고 택시를 탔다.
우리끼리 묵었던 숙소는 시부모님이 자주 이용하시는 골프 리조트라 높은 곳에 있어 택시가 잘 잡히지 않았고 9시 20분에 소아과에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대기만 12번... 아이는 지루한지 보챘고 겨우겨우 진료를 보았다.
후두염. 아이가 어려 밤에 위험할 수 있으니 잘 살펴보라고 하셨고 찬바람을 쏘이지 말라고 하셨다. 제주도에서 바람을 쐬지 말라니... 나는 여행은 틀렸구나.
약을 받아와 열 아홉명 숙소에 체크인을 했고, 나는 숙소를 떠나지 못했다...
유모차 방풍커버도 챙기지 않아 급하게 당근으로 구해 숙소의 마당 정도만 나가서 산책했다. 온 가족 비자림, 성산일출봉을 구경하고 옥돔구이를 먹을 때. 나는 숙소에 남아 라면을 끓여 먹었다. 하필 숙소가 복층이라 약을 먹고 기운이 약간 난 둘째는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바빴고 나는 덩달아 운동을 열심히 했다. 실내에서 애플 워치 운동량을 다 채웠으니 말해 뭐해. 종아리가 아직 당긴다.
그날 저녁은 마당에서 흑돼지 바비큐를 먹었으나 첫째마저 입술을 다쳐 못 먹겠다 징징거려 고기도 몇 점 못 먹고 둘 데리고 숙소 안으로 들어왔다. 얘들아 여행에서는 아프지 말아 줄래?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했던 여행
그럼에도 불구하고 즐거웠다. 숙소 뷰가 예뻐 아이랑 숙소에서 바다 구경도 했고, 날 걱정한 시어머님과 남편은 갈치구이와 갈치조림을 포장해서 가져다주시기도 했다. 둘째 날 밤에 먹은 딱새우 회는 내 인생 새우가 될 만큼 달고 맛있었다.
첫 비행기를 탑승한 둘째가 갈 때, 올 때 모두 안겨서 잘 자고, 잘 먹고 잘 놀았다.
첫째는 또래 육촌 형제들과 신나게 뛰어놀았고 말도 타고, 밥도 꽤 먹어주었다.
다행히 약을 먹은 둘째가 밤에는 잘 자 주어 저녁엔 사촌들과 함께 한 잔 하며 수다도 떨 수 있었다.
그리고 후두염이 심하지 않아 둘째는 다시 어린이집 등원을 시작했다. 컹컹거리는 기침은 미세하게 남아있지만 큰 열 없이 잘 지나가 주어 고맙다.
첫째는 제주도 여행이 즐거웠다고, 또 언제 가냐고 물어본다.
고기를 못 먹은 게 아쉬워 어제 남편과 제주도 돼지고기를 파는 제주 고기 체인점에 가서 소주 한 잔에 근고기를 먹었다.
애들 키우며 생기는 돌발상황이 어렵지만, 지나고 보면 이것도 추억일 테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아파도 이렇게 즐겁게 이겨 나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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