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심을 하면 무얼하나. 밥 안 먹는 아이와 씨름하기.

2022. 10. 21. 10:58읽으며쓰는육아일기

남긴 밥. 반찬은 하나도 건들지 않음.

어제의 나와 너

분명히 어제 낮에 육아와 관련된 독서를 했고, 힐링했다. 아이들을 사랑으로 보아야지 다짐도 했다.
잘 노는 아이를 데리고 집에 기분 좋게 들어와서 저녁 준비를 했다. 남편은 야근이고 나는 낮에 시험 대비 수업 하나를 하고, 은행에서 업무를 보고 와서 약간 피곤했지만 내 컨디션도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밤에 수업이 하나 더 있어 조금 피곤한 마음이 있는 정도였다.
체력이 떨어진 아이들에게 고기를 먹이고 싶었고 우리 부부는 등심을 좋아하지만 아이들 먹기 좋게 부드러운 소고기 안심을 사놓고 맛있게 먹여보자 싶어 찹스테이크 레시피를 찾아 야채 썰고 고기 썰고, 소스도 만들고 열심히 식사 준비를 했다. 질긴 건 못 먹는 아이라 다시 야채랑 고기를 잘게 썰어 좋아하는 하트 모양 식판에 차려놓고 밥 먹으라고 불렀다.

얼마 전 사 주었던 좋아하는 책을 읽고 있던 첫째는 터덜터덜 억지로 식탁에 앉았다. 둘째는 먹느라 바빴고(물론 아직 숟가락질이 서툴러 흘리는 것이 반, 고기를 씹다 못 씹고 뱉어내는 것도 반) 첫째는 뚱한 표정으로 "이거 다 먹어야 해?" 물었다.

화가 또 넘실 넘실 몰려왔지만 그래도 먹어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고, 네가 좋아하는 케첩을 넣은 소스니 맛있을 거라 설득하고 둘째 밥 먹이며 나도 밥을 다 먹었다. 그리고 옆에 첫째 식판을 봤는데.

딱 밥 한 숟가락만 먹은 채, 멍하니 앉아있었다.

화도 나고 눈물도 나고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식판을 치우고 먹지말라고 했다. 별다른 저항도 없이 자기 방에 또 들어갔다. 둘째 먹은 것 치우면서 식판을 보니 정말 연근 개수도 그대로, 김치도 그 조각 그대로, 숟가락 보니 찹스테이크는 정말 맛도 안 보았더라. 화가 나서 다시 불러 물어봤다. 어떻게 하나도 안 먹을 수 있니? 왜 안 먹었니? 또 배가 아프니?
고개를 젓는 애에게 그럼 맛이 없어 보여 안 먹었니? 했더니 끄덕끄덕.
그럼 뭘 주면 먹을래? 했더니 "계란밥" 이란다.
한숨을 쉬고 들어가라고 하고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펑펑 울었다. 화가 나는데 지금 애랑 이야기하면 폭발할 것 같다고. 남편이 첫째를 바꿔달라 했고 아이는 방에서 아빠와 통화를 하고 나는 거실에서 엉엉 울었다. 마음속에 무언가 빵 터져버린 것 같았다. 둘째는 엄마 우는 모습이 낯선지 "왜" "왜" 하며 무릎 위에 앉아 날 위로했다.

남편의 처방

굶기기로 했다. 아침 저녁은 내가 준비하지 않기로 했다. 자세히 이야기하자면 밥 준비를 해서 나머지 식구 식사는 하되, 첫째가 배가 고프다고 이야기하지 않으면 주지 않기로 했다. 당분간은 할머니 댁에도 가지 않고, 외식도 하지 않고, 간식도 없는 것으로 했다. 남편은 일주일이면 잘 먹게 될 것이라 했다. 물론 아이가 식사시간에 먹겠다고 이야기하면 당연히 같이 식사를 하지만 배가 고프지 않으면 먹으라고 권유도 하지 않기로 했다. 애가 또 안 먹어 아프면 차라리 길게 보고 수액을 맞추는 한이 있더라도 지켜보자 했다. 먹는 행위 자체에 즐거움을 모르고, 밥의 감사함을 모르니 그게 낫겠다고 했다.
그리고 남편은 아이에게 엄마가 왜 화가 나고 속상했는지 설명해주었다. 네가 그림을 예쁘게 그려 엄마에게 선물했는데 엄마는 쳐다도 안 보면 어떠하겠냐고, 엄마가 널 위해 정성껏 준비했는데 맛도 안 보면 엄마는 그런 기분이었을 거라고.
그 예시가 통했는지 나에게 사과를 하러 왔다. 하지만 기분이 풀리지 않아 그 당시엔 엄마는 상처 받았다 하고 넘어갔다. 밤이 되어서야 화해 비슷한 것만 했다.
그리고 자기방에서 책 읽도록 냅두었다. 자기 직전 퇴근한 남편을 통해 카드를 써서 줬다.

엄마 너무너무 미안해
내가 밥을 안 먹어서 미안해.
사랑해

카드를 읽고 펑펑 울고 아이에게 가서 또 부둥켜 안고 울었다. 책을 아무리 읽으면 무얼하나. 배가 안 고파 애가 안 먹을 수도 있는데 무엇이 그렇게 나는 속상한가.
나는 어떻게 일곱 살 아이보다도 마음이 작은가.
다 너무 어렵다. 어제는 정말 도망가고 싶었다.
다짐으로 길게 글만 써 낸 내가 부끄러웠다. 나중에 첫째가 엄마를 원망하면 어쩌지. 나는 좋은 엄마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