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9. 29. 09:40ㆍ읽으며쓰는육아일기
밥 안 먹는 우리 첫째
첫째 아이는 안 먹는 아이다. 밥만 안 먹는 것이 아니라 그냥 먹는 행위 자체에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정말 더럽게 안 먹는다.
내가 매일 제일 많이 하는 말은, 씹어라, 삼켜라, 빨리 먹어라, 제발 좀 먹어라 이런 것들이다.
성격은 또 어찌나 여유로우신지, 밥 먹는 데에 1시간은 걸리는 것 같다. 양은 16개월 동생보다 적을 때도 있다.
밥만 안 먹으면 다행이게, 가리는 것도 엄청나다.
우선 아이들이 엄청 좋아한다는 과일은 사과, 배, 수박 정도를 제외하면 안 먹는다. 귤도 딸기도, 포도도 안 먹는다. 어제 아침엔 부탁하고 협박해서 포도 다섯 알 겨우 먹였다. 햄버거, 피자 싫어한다. 입에도 안 댄다. 크림이나 마요네즈, 소스가 들어간 음식도 거부한다. 파스타는 주로 오일 베이스만 먹는다. 토마토도 영 즐기지 않는다. 당연히 매운 것도 못 먹는다. 새우, 조개 등의 해산물도 안 먹는다. 흰살 생선만 먹는다. 고등어나 삼치는 먹기는 하지만 껍질 부분은 기겁을 한다. 한 끼 먹은 음식은 다음 끼니에 절대 먹지 않는다. 동생은 된장찌개만 세 끼 먹었는데 얘는 기겁을 한다.
얼마나 먹는 행위가 싫으냐면,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이나 과자, 초콜릿도 먹다 놓는다. 배가 부르거나 질린단다. 아플 땐 막대 사탕, 꿀물도 거부한다. 36개월 땐 모든 먹는 행위를 거부해서 혈당이 떨어져 대학병원 응급실에, 입원까지 했던 아기.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우동. 영양가 없이 면만 딱 먹는다. 휴.
그래서 뭐가 문제인데
안 먹으니 말랐다. 이상하게 키는 크긴 하는데, 계속 말라간다. 모든 옷 사이즈가 허리는 헐렁, 길이는 짧다.
요즘은 마른 게 대세이니 옷을 입혀놓으면 예쁘긴 하다. 레깅스도 헐렁한 얇은 다리가 어떻게 보면 예쁜 것 같기도 하다. 소아 비만으로 고민하는 것보다는 낫나 잠깐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건강해야지. 얘는 배도 아프고 머리도 아프고, 목도 아프고 항상 어디가 아프단다. 체력도 약하고 힘도 약해 16개월 동생에게 곧 힘으로 밀릴 것 같다. 다이어트라도 하는지 달걀도 흰자만 먹고 고기에 비계가 조금이라도 붙어 있으면 못 먹겠단다. 조금이라도 자기가 먹기 싫은 것 입에 넣으면 헛구역질을 한다. 만 6세가 그러고 있으니 엄마는 숨이 뒤로 넘어간다. 배가 아프다고 해서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 찍고 초음파를 찍는데 갈비뼈가 앙상해서 내가 너무 부끄러웠다. 의사 선생님이 얘는 그냥 입이 짧다고 하셨고, 조금만 살이 더 찌면 좋겠다고 하셨고, 배가 아프다고 하면 신경성으로 아플 만한 아이니 스트레스를 주지 말라고도 하셨다. 휴.
어른들은 계속 어떻게든 먹여보라 하시는데 이게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요리를 되게 못하는 것도 아니고, 꽤 즐긴다고 하는데도 먹는게 한정적인 아이를 키우기엔 내 솜씨가 너무 부족한 것 같다. 저녁은 시간이라도 여유로운데 등원 준비를 급하게 해야 하는 아침엔 내가 내 분을 못 이겨 화를 낸다. "제발 씹어!!!!"
그나마 아침 먹이는 법
한동안 밥 먹이는 것을 포기했다. 이 아이와 나의 건강한 관계를 위해선 그게 낫다 싶어서 아침 식사는 대충 때우기로 했다. 시리얼에 우유, 거기에 초코 가루까지 넣어서 '먹인다'라는 것 자체에 의의를 두기도 했다. 그래도 양심에 찔려 아기용 육포나 훈제 메추리알을 같이 먹이고 영양제로 때우기도 했다.(다행히 자주 아픈 아이는 약을 참 잘 먹는다. 한약도 잘 먹는다.) 그러다 너무 자주 아프니 양가 어른들이 그래도 아침은 밥을 먹여 보내라고 부탁(?)하셨다. 우리 아이들의 주 양육자는 우리 부부와 양가 부모님 총 여섯이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다시 아침밥 먹이기 작전에 돌입했다. 식판식도 해봤는데 저녁에는 여유롭게 먹으면 되겠지만, 일어나서 입맛 없는 아이는 반찬을 집어 밥과 같이 먹지 못했다. 그래서 한 그릇 음식으로 통일. 한우 갈비탕, 한우 곰탕을 항상 냉동실에 구비해두고 밥 말아 먹이기, 볶음밥 만들기, 주먹밥 만들기, 김밥 만들기. 다 큰 애 주먹밥을 하트, 곰돌이, 별 모양 번갈아 가며 조금이라도 밥에 관심을 갖게 노력했다. 아이가 일어나기 전에 아침을 준비해두고 깨웠다. 전날 메뉴를 본인이 정하게 하면 그래도 조금 더 먹었다. 반찬을 먹여야 하는 일이 있으면 김에 밥이랑 반찬을 같이 싸서 대령했다. 물론 동생은 자기 밥 다 먹고 언니 밥을 탐낸다. 이렇게 대령해도 30분 넘게 걸리기 때문에 여전히 내 숨은 넘어간다... 이제 곧 학교에 갈 텐데. 준비 시간은 더 바빠질 텐데 큰일이다. 엄마는 식욕이 넘쳐 고민인데 언제쯤 이 아이가 스스로 밥을 잘 찾아 먹을까. 엄마의 고민은 늘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월이 약이겠지. 언젠가는 나의 제일 큰 고민이 밥 먹이기가 아닌 날이 오겠지. 오늘 아침엔 샤우팅을 다섯 번 정도 했다. 오늘 저녁엔 화를 내지 말고 밥을 먹여야지. 오늘 저녁에는 무엇을 먹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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